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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길벗어린이 민들레그림책상 심사평

등록일 2025-07-14


제1회 길벗어린이 민들레그림책상 공모전 심사평
심사위원: 무루(작가), 이명애(그림책작가), 이수연(그림책작가)

[수상작]
대상: 나현정 작가 『내일도 그럴 거야』
우수상: 김희현 작가 『사랑이 어때서』

제1회 길벗어린이 민들레그림책상 공모전에는 총 354편의 그림책이 응모되었다. 이제 막 독자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이야기들을 마중하는 마음으로 반갑고 기쁘게 심사에 임했다. 각각의 매력과 개성을 지닌 응모작들을 통해 그림책이 담아낼 수 있는 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단숨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도 있었고 참신한 시선이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작품들도 있었다. AI 작업 또한 눈에 띄어 앞으로의 창작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받기도 했다. 심사에서는 한 권의 그림책으로 완성되기 위한 요소들을 각 작품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갖추고 있는지 보았다. 이야기의 구성, 글과 그림의 호흡, 형식과 스타일의 조화, 주제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까지 두루 살폈다. 본심에 오른 여덟 편의 작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룬, 한 권의 책으로서 독자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작품들이었다.

『여섯 아이의 멋진 바다』는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우정의 영역을 확대하는 이야기다. 여섯 아이가 물을 모아 만든 웅덩이가 바다가 되는 순간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이 가진 창조성과 집단적 놀이의 마법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글과 그림이 음률을 쌓으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구성과, 아이들이 만들어낸 바다에 문어가 등장해 현실 너머로 우정을 확장하는 결말에서 이야기의 탄탄함이 느껴졌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 또한 돋보였다. 그러나 단순한 그림으로 완성된 이미지는 다소 아쉬웠다. 여섯의 다름, 뭍과 바다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상징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이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보다 풍성해진다면 주제의 전달력도 보다 두터워질 수 있을 것이다. 분명, 함께 모여 놀이를 만들고 세상을 탐색하는 아이들의 풍경이 귀해진 시대에 반가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연필』은 정교한 그림과 시각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나의 연필 안에 공존하는 ‘그리는 자아’와 ‘지우는 자아’의 갈등을 통해, 상반된 욕망 사이의 긴장과 화해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연필과 지우개라는 친숙한 도구의 물성을 의인화해 익숙한 주제를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그렸고, 닳아가는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공존의 감각을 은근하게 환기했다. 특히 창조와 소거, 욕망과 절제, 독립과 협력이라는 상반된 가치들이 한 몸 안에서 부딪히고 조율되는 과정은 이 세계가 직면한 갈등과 화합의 구조를 단순하면서도 정제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만 상징이 다소 직선적으로 읽히는 면이 있고, 지우개가 연민을 느껴 협력에 이르는 감정 변화가 비교적 짧은 전개 안에서 이루어져 감정의 설득이 부족했다. 감정 변화의 과정을 조금 더 세밀하게 포착해 모두가 대등한 마음의 크기로 기꺼이 손잡는 방법을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뾰족구두 아가씨』는 한 편의 풍자극이다. 과장된 구두의 높이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부풀려지는 자아와 그로 인한 소외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율동감이 느껴지는 신선한 그림과 경쾌한 시각적 연출이 돋보였고, 인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 이른바 ‘보이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인플루언서적 삶의 구조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로 압축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주인공의 변화가 단선적이고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규모가 다소 작게 느껴진다는 아쉬움이 있다. 서사의 전개 과정에서 작품의 주제가 품고 있는 깊이를 담아낼 방법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겠다.

『미세한 세계』는 존재의 소멸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을 조형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낯선 물고기 한 마리의 죽음에서 시작해 내 고양이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이야기는 외부에서 내부로, 원경에서 근경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시선을 이동시키며 모든 것이 ‘지금, 여기’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온화하게 설득한다. 정서와 사유의 흐름에 가까운 구성임에도 페이지마다 미세한 감각을 흐트러짐 없이 붙들고 있어 높은 몰입감을 주었다. 특히 그림책이 시와 철학, 자연 인식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주는 울림이 컸다. 응축된 감정을 담은 시적인 문장들이 돋보였고, 한 생명의 소멸을 감각의 확장과 존재의 전환으로 풀어낸 점, 익숙하고 구체적인 감각을 통해 ‘계속 살아 있는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그림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작은 원소들로 시각화한 방식은 자칫 상상의 여지를 제한할 수 있고, 따뜻한 주제와 달리 디지털로 채색된 그림의 온도가 차가운 점이 아쉽다는 의견이 있었다. 주제와 보다 친밀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이야기가 지닌 정서적 매력이 힘을 얻기를 기대한다.

『여기 붙어라!』는 자발성과 즐거움, 연결과 상호작용이라는 놀이의 본질을 시각적 언어로 구현해 내내 웃음을 자아냈다. 친구를 모으는 손가락 놀이를 긴 아코디언 제본 속에 조형적으로 담는 솜씨가 좋았고, 인종, 나이, 성별, 직업은 물론이고 비인간 존재, 삶과 죽음, 허구의 인물들로까지 넓어지는 친구의 범주가 반가웠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요구되고 환영 받는 시대지만 당위적 메세지를 주제로 삼을 때 이야기는 종종 매력을 잃는다. 『여기 붙어라!』는 그런 함정을 피해 유쾌한 형식과 단순한 구조 안에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담았다. 누구보다 어린이들이 환영할 그림책일 것임을 예감하며, 읽는 동안 책속에는 없는 또다른 손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그림이 한 발 더 나아갈 지점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사랑이 문제야』와 『사랑이 어때서』는 함께 응모된 연작으로, 어린이의 연애 감정을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이다. 어른의 언어로 설명되기 쉬운 감정을 어린이의 일상적 표현과 시각 이미지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와, 생생한 감정의 진폭 속에서 자신만의 설렘을 경험하는 두 아이의 내면을 개성 넘치는 장면들로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은 서로 호감을 느끼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시점을 각각 담고 있어 하나의 이야기로도 읽혔는데, 그중 보다 주체적인 감정 표현을 보여준 『사랑이 어때서』를 우수상으로 선정했다.

『사랑이 어때서』는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역동적인 화면 구성, 감정의 과열 상태를 능청스럽게 포착하며 연애 감정이 어린이에게도 얼마나 강렬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를 유쾌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다만 직설적인 문장과 정서 과잉의 장면들로 감정의 지층이 다소 좁게 느껴질 여지 또한 있겠다. 그럼에도 특정한 시기에 누구나 겪는 설렘과 고민을 이토록 활기차게 담아낸 점에서 이 작품은 누구보다 어린이 독자들에게 뜨거운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도 그럴 거야』는 일상의 불확실성과 감정의 복잡성을 세 친구의 대화를 통해 섬세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그래픽노블 형식의 그림책이다. 삶에 대한 태도와 속도가 저마다 다른 오리, 두더지, 달팽이가 각자의 취향과 고민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다정하고 애틋했다. 상실, 우울, 불안, 다름, 용기, 우정, 사랑 등 삶의 핵심 정서를 평범한 일상의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감정의 굴곡을 따라가는 리듬이 이야기의 구조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몰입을 유도했다. 긴 호흡에도 불구하고 인물 간의 대화와 감정 흐름을 잇는 서사적 설계도 안정적이었다. 결말에서 사랑과 우정의 정서를 충만하게 담아낸 그림들을 통해 완성될 장면을 신뢰하며 그려볼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품은 많은 이들에게 이 사랑스러운 작품이 다정한 동행이 되어주리라 기대하며 『내일도 그럴 거야』를 대상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번 심사를 통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그림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감각과 사유의 통로가 되는 작품, 웃음과 위안을 건네는 이야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정제된 이미지와 언어로 풀어낸 작업들이 인상 깊었고,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미학적·철학적 가능성 또한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세계를 품으려는 시도임을 일깨워준 모든 응모자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대표 집필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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